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천 상륙작전 (문단 편집) === 민간인 희생 === 인천상륙작전 직전 실시된 미군의 폭격에서 무고한 민간인 희생이 있었다. 미군의 폭격은 상륙작전을 염두에 둔 전략 폭격이었지만 월미도 주민과 신원불명의 희생자 100여 명이 폭격으로 희생되었다. 이때 죽은 사람들과 폭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국가로부터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이후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합의해 피해 보상과 귀향 조치를 취했다. 다만 [[인천광역시의회]]에서 [[https://news.joins.com/article/23417995|인천 상륙작전 피해 보상]]을 하겠다고 입장을 보여 논란이 있었다. 인천시는 과거에도 피해 보상은 [[유엔군사령부|UN 참전국]]들과 한국 정부가 줘야 한다는 입장도 보여줬기에, 비판하는 측은 전국민이 피해자인데 특정 지역만 보상해 준다는 것을 문제삼고 있다. 또한 전쟁을 일으킨 건 북한인데 정작 그 북한에는 한마디 말도 없이 한국 정부와 UN군만 비난하냐는 비판도 잇따랐다. 당시 북한군은 상당수가 인천 시가지에 배치되어 있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도 알 수 있듯 황량한 해변에서 두들겨 맞기보다는 건물을 엄폐물로 삼아 [[시가전]]을 벌이는게 효율적이기 때문. 게다가 시가지에서 농성하는 적들을 상대하려면 우선 포격과 폭격(특히 네이팜탄이 효과적.)으로 건물째 부숴버리고, 보병과 기갑부대를 같이 투입하는게 가장 좋다. 실제로 [[이라크 전쟁]]에서 [[팔루자 전투]]나 바그다드 전투도 이와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었고[* 물론 네이팜탄은 쓰지 않았다는 게 차이점.], 스탈린그라드에서도 독일군이 소련군의 위협을 배제하기 위해 [[Ju87]]등으로 폭격을 실행했다. 게다가 인천 시내의 북한군이 적다곤 해도 시가전에 발목잡힐수록 상륙작전 및 포위 효과가 그만큼 반감되어 버리는데,[* 일단 남쪽에 내려가 있는 주력이 인천을 방어하거나 포위를 뚫기 위해 인천으로 올라올 수 있다.] 이 때문에 진로상의 건물들은 싸그리 부수고 나아갔고 이 과정에서 민간인 사상자도 속출했다.[* 사실 2차 세계대전 때에도 그래왔지만, 포격 실시 전 피폭지 일대의 민간인들만 선택적으로 전부 피난시킬 순 없다. 게다가 이를 경고하기 위한 침투조를 투입해도 모든 민간인들이 순응하는 결과는 사실상 기대할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적군도 알아채서 대비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